





한국전쟁 당시 1951년 2월 있었던 지평리 전투가 중공군 참전 이후 처음으로 거둔 승리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투로 인해 국군과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반격하고 휴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환점이 됐다.
양평군은 6월 25일 양평도서관 물빛극장에서 ‘2025년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지평리 전투,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윌리엄 마이클 알렉산더(미 2사단 역사담당관)·이반 카도(프랑스 국방역사부 교리·작전 및 정보국장)·센즈화(중국 화동사범대학 역사학과 종신교수) 등 해외 학자들과 양영조(국방전략연구원 교수)·나종남(육군사관학교 교수)·심호섭(육군사관학교 교수)·김보영(한양대학교 교수)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이어진 지평리 전투가 “중공군 참전으로 1·4후퇴를 겪던 국군과 유엔군이 처음으로 거둔 승리로,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심포지엄에 처음 참석한 센즈화 교수는 “중국 인민지원군 팽덕회 총사령관이 제3차 횡성 전투 승리 후 적을 과소평가했고, 제4차 공세에서 미군이 지평리에서 도망갈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러나 리지웨이 장군이 지평리를 사수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리고, 프리먼 대령이 이끄는 미군 23연대와 몽클라르 중령의 프랑스대대가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해 공군·기갑부대·영국군 지원 속에 치열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병력 충원과 보급 한계를 드러낸 전환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는 프랑스 몽클라르 장군의 활약상을 강조했다. 그는 “59세였던 몽클라르 장군은 1·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웅으로, 계급을 중장에서 중령으로 낮추고 용병을 모아 한국전에 참전했다”며 “조선일보가 그를 ‘푸른 눈의 이순신’으로 부른 이유는 생명과 희생, 사명 충실, 공포 극복 용기, 동반과 소통, 계급 초월, 가족 사랑과 공사 구분 등 영웅적 가치가 이순신 장군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몽클라르 장군은 임신한 아내와 두 살 아들의 반대에도 ‘아이들 세대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다’며 가족을 설득했다”고 소개했다.
미군 23연대 프리먼 대령은 42세의 젊은 지휘관이었으나, 풍부한 전투 경험을 지닌 몽클라르 장군과 협력해 치열한 야간 백병전과 총검술 교전 끝에 승리를 거뒀다.
참석자들은 “지평리 전투는 국군과 미군의 사기와 전의를 회복시켜 38선 이북으로 중공군과 북한군을 밀어내고 휴전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