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사진=픽사베이

요즘 방송이나 신문 등에서 너무나 흔하게 영어 사용 빈도가 높아져 보이는 것이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이제 세계가 혼자만의 힘으로만 살아갈 수 없고 지구촌이란 말이 피부에 와 닫는 시기에 영어 사용 빈도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며 막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영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한국어를 쓰면서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라 본다. 이에 반론을 제기 할 수도 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 좀 섞어 쓴 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겠냐”고 충분히 되물을 수 있다.

해방 이후 미 군정이 시작되고 영어가 퍼지면서 자연스레 파생된 우리 언어생활은 한국어로 고쳐 쓸 시간도 없었고 그 문제를 해결할 정부 의지도 없다 보니 그대로 쓰게 된 것이다. 그 때 사용한 영어를 우리는 외래어라고 표기했다. 한자어 그대로 풀이하면 외부에서 들어온 말로, 우리말로 동화돼 쓰이는 어휘를 말한다. 라디오, 티브이, 로콋트, 레코드 등 당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도 않던 물건을 번역할 틈도 없이 사회에 널리 퍼진 것이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가 당시처럼 영어를 우리말 속에 섞어 쓰는 것이 과연 당연한 것인지 묻고 싶다.

오늘 이 글을 쓰고자 티브이 홈쇼핑(‘집에서 장보기’라 표현하면 어떨까)을 잠깐 보는 사이 의류 판매가 한창이었다. 바지를 판매하는 방송에서 “블루데님, 블랙, 아이보리, 살몬핑크…”라 한다. 외투를 팔면서도 “네이비, 크림마벨, 라벤더…”, 목도리를 들고서도 “오트베이지, 차콜블랙, 크림오렌지…” 등으로 표현했다. 단지 색깔만 표현한 것이 이렇다. 진행자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면 그야말로 기가 막힐 정도 다. 당장 티브이를 켜면 즉시 목격할 수 있는 사실이다. 그들이 하는 대화중 절반 이상은 영어다. 아예 대화 자체를 영어로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울 정도다. 그들이 영어를 섞어 쓰는 이유는 뭘까. 우리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색깔이 있기 때문일까. 뭔가 조금 더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영어를 섞어 쓰면 제품의 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일까.

그런가 하면 작년부터 국토교통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주택 공급 위클리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처음 이 발표를 듣고 귀를 의심했다. ‘주간보고’나 ‘발표’ 정도로 쓰면 될 일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런 제목을 썼을까. 이런 정부를 믿고 세금을 내야 하나 생각했다. 대통령조차 ‘가버먼트 어토니’, ‘글로발 스텐더드’, ‘도어스테핑’, ‘내셔날 메모리얼 파크’ 등 영어 단어를 즐기고 있다. 대통령이 외국 순방 중 영어로 연설하는 것은 이해하나, 우리 국민과 기자를 상대로 말하면서 영어를 쓰는 것은 정식으로 이중언어 사용을 공식화 하기전에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국어기본법 제2조(기본이념)는 “국가와 국민은 국어가 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임을 깊이 인식하여 국어 발전에 적극적으로 힘 씀으로써 민족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제14조는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 등을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 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괄호 안에 한자 또는 다른 외국 글자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일찍이 말과 글을 지키지 못한 민족과 그 문화는 물론 나라마저 잃어버린 예가 수없이 많았다. 국어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주시경 선생은 “말과 민족과의 관계는 떼 놓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조차 심심찮게 영어 단어를 앞장세워 소중한 우리 한글을 도외시하고 있으니, 크게 우려할 일이다. 대통령의 잘못은 참모들이 나서 바로잡아야 할텐데, 그 똑똑한 참모들 중에서 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 한글학회 김주원 회장은 ‘한글 관련 시민단체 운동의 성과와 앞으로 과제’라는 학회 세미나에서 주간한국 이재형 기자와의 면담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국가기관 또는 민간단체들이 순화어를 지정한 후 국민들이 이를 즐겨 사용하도록 홍보하는것이 중요하다. 국민 국어생활에 영향력이 큰 미디어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미디어에서 쉬운 의사소통을 위해 순화어를 쓰도록 힘쓰면 교육 등에도 자연스럽게 확산 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한글학회 회장님이라면, ‘미디어’를 ‘언론매체’라 썼으면 좋지 않았을까. 정부나 언론매체에서 불필요한 외국어를 사용하면 우선 한글학회가 나서서 시정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하고, 정부나 언론매체가 이에 따르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런 노력들이 있는지 묻고 싶다.

한글날이 오면 단 하루 한글의 우수성과 잠깐동안 우리말 사용을 권장하는 언론매체가 홍보성 기사를 내보내는 것도 안타깝다. 세계 어느 민족도 자신의 글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는 나라는 아무도 없다. 오직 한글만 누구에 의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나랏말 관련 국경일을 정해 기념하는 나라도 우리나라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로 알려지는 바람에 우리글을 배우려는 외국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 한글을 더 발전시켜야 할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외면하면 누가 소중하게 생각하겠는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유럽이 조상들이 잘 만들어 놓은 문화유산과 예술품으로 관광객을 불러모아 먹고 사는것을 보고 우리는 깨우쳐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한글을 주제로 관광 상품을 개발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의 영원한 먹거리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