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 고읍교회 30년 이상 추모예배 드리는 강간난 할머니 사연

고읍교회 100주년 자료집에 실린 강간난 할머니 관련 내용. 사진=강은선
지난 3웡 3일 양평공원묘지에서 강간난 할머니 추모예배를 드리는 고읍교회 교인들. 사진=강은선
추모예배 드리는 고읍교회 우태욱 목사. 사진=강은선

옥천면에 있는 고읍교회는 해마다 3월 첫번 째 일요일, 아주 특별한 추모예배를 드린다. 추모예배는 3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고읍교회 건축 당시 전 재산인 논을 팔아 기부한 강간난 할머니를 기리는 추모예배다.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말년 교회에 다니면서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한 강간난 할머니는 고읍교회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강간난 할머니를 대신해 15일 오후 고읍교회에서 우태욱 목사와 김충식 은퇴장로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우태욱 목사 안내로 당회실에 들어서자 책장에는 강간난 할머니의 사진과 감사패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다음은 우태욱 고읍교회 목사와 강간난 할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 아들처럼 아끼셨다는 김충식 은퇴장로와의 일문일답.

Q. 강간난 할머니는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A. 양평읍 오빈리에서 태어났습니다.

Q. 강간난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나요?

A. 고단한 세월을 사셨지요. 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박물장사를 했습니다. 백안리, 오빈리 등 양평 일대를 돌면서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팔러 다니셨지요. 돈을 쓰지 못하고 아끼고 아껴 옥천면에 논 1400평을 구입했습니다. 늦게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교회에 오는 것을 큰 낙으로 삼으셨지요. 당시 고읍교회가 건축 중이었습니다. 건축비가 부족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할머니가 논을 팔아 건축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교회는 할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해 드리고 돌봐 드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1년에 한 번씩 부르셔서 장판 밑에 깔아 놓은 교회서 받은 생활비를 다 돌려주시면서 다시 헌금하라고 하셨지요.

Q. 할머니 가족은?

A. 남편과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6.25전쟁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뜨시고, 아들 둘 역시 전쟁 전에 군에 입대했습니다. 아들들은 군 복무 중에 6.25전쟁이 터져 모두 전사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지요. 전쟁 후 원호 대상자 접수를 할머니의 시어머니 이름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죽고 없다고 했답니다. 며느리 인권은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고, 전쟁 직후 혼란할 때 발생한 일이죠. 그래서 강간난 할머니는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나중에 재혼해 남편의 자식들을 친자식 같이 키우고 거두었지만 또 다시 사별했고, 그 집에서 나와 작은 집에 홀로 사시며 말년을 보냈지요. 친정 쪽으로 조카 한 분 계셔서 할머니 생신 때가 되면 와서 미역국을 끓여드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Q.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셨으며, 교회 장으로 모신 이유는?

A. 강간난 할머니는 1992년 3월 3일 돌아가셨습니다. 교회는 매해 이날을 기념해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고, 벌초도 거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장로님들의 경우 타지에서 오신 분들이 많은데, 부모님 산소 벌초 하듯이 매해 진행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 드렸 듯 할머니는 전 재산을 교회에 바치셨습니다. 교회로서는 당연히 교회 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장사를 하며 터득한 계산법이 분명 있을 텐데,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 논은 할머니의 노후였고 생명 같은 돈입니다. 할머니는 다른 어떤 마음 없이 고읍교회를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운명하실 때도 제가 하룻밤을 같이 지내며 임종을 지켰습니다. 할머니가 거주하던 집에서 고읍교회 교인들과 장례식을 치르고, 시신을 교회로 운구해 맨 앞에 단을 마련해 교회 장으로 치른 생각이 새삼 떠오릅니다. 할머니의 교회 장은 당연합니다.

미담 하나가 있습니다. 할머니가 노년에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 계셨었는데, 그때 고읍교회 여전도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할머니를 돌봐 드렸죠. 세수를 시켜드리고 반찬을 만들어 드리고 죽을 쑤어가고, 휠체어에 태워 산책도 나가면서 할머니가 외롭지 않게 정성껏 보살펴 드렸지요.

Q. 30년이 넘는 긴 세월, 추모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A. 할머니와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고읍교회 역사에 남은 어른입니다. 고읍교회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추모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추모예배를 드릴 계획입니다.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A.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건너 교회로 나오시던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무엇이라도 목회자에게 주시고 싶어하던 어머니 같은 분이었습니다. 특히, 양평시니어신문의 보도로 할머니의 행적이 세상에 알려진다니 감사합니다. 우리 고읍교회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이 어른의 삶이 세상에 알려져 “강간난이의 삶은 값진 인생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강은선 기자
강은선 기자
천지만물의 창조주를 경외하며 꽃과 나무 가꾸기를 좋아합니다. 수필을 쓰며 시낭송을 즐깁니다., 인생 후반기에 경험해 보지 못 한 시니어 기자로 새로운 길을 스스로에게 응원하며 조심스런 발걸음을 걸어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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