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사회보장이 개인생활에서 겪는 리스크에 대해 사회가 연대해 대비하고, 개인의 생활을 보장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앞으로의 사회보장은 저출생과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방안으로 장시간 노동·통근, 육아에 의해 자유시간을 빼앗기는 청년세대의 ‘가처분시간’을 늘리고, 여성이나 노인도 안심하고 원하는 대로 일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는 처방도 나왔다.
이 같은 내용은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회장 조남범)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일본 정부 최고위급 전문가들을 초청해 마련한 세미나에서 발표됐다. 우리보다 먼저 저출생 고령화를 겪은 일본 고위정부 관계자의 주장과 처방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근간으로 방문요양, 주야간보호 등 재가노인복지사업을 담당하는 전국 730여개 재가노인복지시설과 2만3000여명의 종사자들의 연합체다.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 일본 전문가 초청 세미나
한국재가노인복지협회는 이날 노인복지 종사자 및 관련분야 전문가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저출생 정책과 개호보험 전문가 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우리나라 대통령실에 해당하는 일본 내각관방 야마자키 시로(山崎史郞) 고문과 지난달 퇴임한 오시마 가즈히로(大島一博) 후생노동성 전 차관이 초청돼 참석했다.
일본 내각관방에서 사회보장·인구문제에 참여하고 있는 야마자키 시로 내각관방 고문은 ‘일본의 인구감소와 저출생 정책’을 주제로 인구감소, 저출생 대책에 대해 발표했다.
오시마 가즈히로 전 차관은 ‘일본 개호보험제도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해, 국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시했다.
“사회보장, 저출생·고령화 대응으로 바꿔야”
우선,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 관심을 끌었다.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와 중국 등 동아시아 전체에 불어닥친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에 해당한다.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과거의 사회보장이 개인이 일상에서 겪는 리스크에 대해 사회가 연대해 대비하고, 개인의 생활을 보장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앞으로 일본의 사회보장은 저출생과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1950년 사회보장제도심의회 권고에 따라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됐다. 당시 정의한 사회보장제도란 “질병, 부상, 사망, 실업 등 곤궁의 원인에 대해 보험적 방법 또는 직접 공공의 부담으로 최저한도의 생활보장과 함께 공중위생 및 사회복지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육아·청년세대 지원 급속하고 강력하게”
야마자키 시로 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2년 12월 사회보장구축회의에서 향후 사회보장 기본방향에 대해 ▲저출생·인구감소 대응 ▲초고령 사회 대응 ▲지역공생사회 실현 등 핵심적인 3가지 목표를 보고했다. 이 3가지 목표는 지금까지 추구한 국민 개인의 생활보장에 더해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정책 방향이란 설명이다.
첫째, 저출생·인구감소 대응과 관련해선 육아를 비롯해 청년세대에 대한 지원을 급속하고 강력하게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점이 강조됐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저출생 흐름을 바꾸지 못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반성이 엿보인다.
“출산 후 여성 경력단절이 가장 심각한 문제”
저출생 관련,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출생률 향상에는 즉효약이 없다”고 단언하면서, “가장 긴급한 과제는 ‘미래의 투자’로서 아동과청소년에 대한 지원을 급속하고 강력하게 정비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저출생 요인은 비혼은 물론 맞벌이 세대의 증가와 함께 비출산, 만혼, 노산이 확산되고, 경제적 부담과 육아에 따른 심신 부담 등 매우 다양한 원인이 있다”면서, “청년층의 소득과 고용보장은 물론, 결혼지원, 불임치료, 일과 육아 양립지원, 육아부담 경감 등 다양한 시책을 강국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특히, 여성이 출산을 정점으로 겪게 되는 경력단절을 가장 심각한 원인으로 꼽고, “가족의 개념을 전통적인 ‘남녀커플과 자녀’가 아니라, 미국이나 스웨덴처럼 친한 친구나 이웃도 가족의 일부라 생각하는 육아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원하면 일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제도”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고령화 대응과 관련해선 노동시장과 고용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일본 정부는 이미 2022년 12월 이뤄진 ‘전세대 다회보장구축회’ 보고를 통해 우리나라 고용보험에 해당하는 ‘근로자개보험’에 프리랜서·임시직 노동자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2040년까지 내다본 중장기 과제로 상정했다.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인구감소는 저출생과 함께 반드시 고령화를 동반한다”며, “단시간노동 확대 및 보호, 노동시간 연장 등 다양한 근무형태에 대해 중립적인 사회보장제도를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야마자키 시로 고문은 마지막 과제로 제시한 지역공생사회 실현과 관련해선 “의식주 지원에 그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의 연대, 한 사람 한 사람이 사는 보람과 역할을 갖고 서로 협력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포괄적인 사회 실현을 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령층 질병 예방·지역사회 지지 확보 중요”
이날 세미나에서 ‘일본 개호보험제도의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오시마 가즈히로 전 차관은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역시 인구감소에 따른 돌봄인력 부족과 재정위기를 꼽았다. 개호보험제도는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해당한다.
오시마 가즈히로 전 차관은 “인구감소시대를 맞아 개호(돌봄)인력 부족은 임금인상, 외국인 인력 증가 등 결국 재정의 지속성에 큰 부담이 된다”면서, “예방을 통해 발병 전 본래의 생활로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한편, 고령자에 대한 지역민간의 상호 지지와 고령자 본인의 사회참가, 지역공헌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개보보험제도는 급성기 의료, 만성기 의료를 종축으로 하고, 예방, 지역사회 지지가 횡축을 이루는 지역포괄케어로 나아가야 한다”며, “특히, 고령인구의 노쇠를 예방하기 위해 식사, 신체활동, 사회참여를 늘리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